작은 존재들의 큰 이야기, 마루 밑 아리에티
2010년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마루 밑 아리에티’는 메리 노튼의 소설 『The Borrowers』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인간 세계에 숨어 사는 ‘작은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낸 애니메이션입니다. 감독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맡았으며, 이는 그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도쿄 외곽의 오래된 저택을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이곳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빌리는 자(Borrowers)’들이 존재하며, 주인공 아리에티는 그중에서도 가족과 함께 조심스럽게 인간의 물건을 빌려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리에티는 호기심 많고 씩씩한 소녀로, 어느 날 저택에 요양차 머물게 된 소년 쇼우와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이 둘의 만남은 섬세하면서도 상징적인 순간들로 가득하며, 존재의 크기나 종족을 뛰어넘는 교감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의 핵심은 바로 ‘소소한 것의 소중함’입니다. 작은 잎사귀 한 장, 물방울 하나, 설탕 한 알이 아리에티의 세계에선 커다란 자원이자 모험의 대상입니다. 그들의 시선에서 본 세계는 거대하고 낯설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생명력 넘칩니다. 작품은 뚜렷한 갈등이나 큰 위기 없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쇼우의 병약한 몸과 아리에티의 강인한 생명력의 대비는 존재의 가치와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지브리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이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가’라는 주제를 던집니다. 마루 밑에서 사는 작은 존재들의 삶도, 사람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일본 전통 정원과 자연 연출의 정수
‘마루 밑 아리에티’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배경’입니다. 이 작품은 지브리 특유의 수채화풍 작화와 함께 일본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정원을 배경으로 한 장면마다 식물의 결, 바람의 흐름, 빛의 방향까지도 계산된 듯 정교하게 그려져 있으며, 이는 단순한 배경 그 이상으로 이야기와 감정선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리에티가 집 밖으로 처음 나서는 장면은 명백한 ‘세계의 확장’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관객은 그녀의 시선에서 꽃 한 송이, 개미 한 마리, 풀잎의 흔들림조차 새로운 모험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미시적 관점으로 그려진 자연은, 실제보다 더 생생하고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특히 일본 정원의 대표 요소인 돌길, 연못, 이끼 낀 바위와 나무 그늘은 전통적이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작품에 녹아들며, 시청자에게 마치 어느 여름날 고요한 정원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비 오는 날 아리에티가 우산 삼아 나뭇잎을 머리에 이고 달리는 장면이나, 물방울이 떨어지는 연못가를 걷는 장면은 자연과 인간(또는 생명체)의 유기적인 조화를 상징합니다. 모든 것이 그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자연은 단순한 무대가 아닌 삶의 일부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자연 연출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전달합니다. 인간이 인식하지 못했던 작은 생명도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삶의 풍요로움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배경의 디테일은 감성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현실성을 더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색채는 계절감과 시간의 흐름을 정밀하게 반영하고, 빛과 그림자는 인물의 감정과 장면의 분위기를 더 풍부하게 만듭니다. 이런 면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 작품 중에서도 배경 연출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지브리의 자연주의 세계관이 담긴 작품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자연주의 세계관’을 가장 순수하게 구현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등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 생태계에 대한 존중을 일관되게 이야기해 왔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소비하며 살아가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거대한 인간이 무심코 놓은 설탕 한 조각이 아리에티 가족에게는 생존의 열쇠가 되며, 인간의 행동이 다른 생명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체감하게 합니다. 작품 속에서 ‘아리에티’는 단순한 작은 존재가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생명체로 그려집니다. 그들은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자원을 절약하며,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신중하게 움직입니다.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생명 중심의 시각을 시청자에게 제안하는 장면입니다. 또한 이 작품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느림의 미학'을 강조합니다. 빠르게 변화하고 소비되는 현대 사회에서, 아리에티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소박하지만 풍요롭습니다. 작은 찻숟가락 하나로 만들어진 침대, 꽃잎으로 장식된 장식장 등 모든 소품은 자연에서 온 것들로, 이들의 삶은 철저히 환경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브리는 이 작품을 통해 거창한 환경운동이나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보여주고, 시청자로 하여금 그 안에서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가진 힘이며, ‘마루 밑 아리에티’가 특별한 이유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작은 존재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며, 우리 모두가 자연 속에서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묻는 작품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어른들에게는 성찰을 선물하는 지브리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판타지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결론
‘마루 밑 아리에티’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지브리의 자연주의 명작입니다. 아름다운 일본 정원 속에서 펼쳐지는 작고도 깊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자연과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됩니다.